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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중요 순간을 지배한 스트라이커 본문
박주영의 발끝은 언제나 ‘중요한 순간’을 알고 있었다. 2000년대 한국 축구가 가장 기대한 차세대 스트라이커로 떠오른 그는, 이름만으로도 경기장을 채울 수 있는 스타이자 결과로 말을 증명하던 승부사였다.'

청소년 대표팀에서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여준 그는 프로 데뷔 시즌인 2005년, K리그 무대를 뒤흔들며 등장했다. 복귀 후 협상권을 가졌던 포항 스틸러스가 있었지만, 역대 신인 최고 대우를 약속한 FC 서울이 위약금 5천만 원까지 대신 지불하며 그의 선택을 이끌었다. 2005년 2월 28일 입단, 그리고 이틀 뒤 열린 공식 기자회견은 이미 ‘신드롬의 서막’이었다.

데뷔전 상대였던 성남전에서 두 경기 만에 첫 골을 넣었고, 5월 광주 상무전에서는 프로 첫 해트트릭까지 기록하며 그의 이름 석 자가 곧 흥행 카드가 됐다. 리그 12골(득점 2위), 리그컵 포함 30경기 18골, 32억 원에 달하는 경제 효과 분석까지 더해지며 한국 축구 시장이 들썩였다. 그는 K리그 역사상 최초 만장일치 신인상을 받으며 실력과 존재감을 동시에 각인시켰다.

이후 시즌 그는 꾸준히 팀의 중심으로 뛰었다. 2006년 32경기 10골, 2007년 부상 속 14경기 5골, 2008년 통산 23골 9도움을 남기며 해외 도전을 선택했다. 2008년 8월 31일, 프랑스 리그1 클럽 AS 모나코으로 200만 유로의 이적료에 합류한 순간, 유럽 생존 경쟁이 시작됐다. 첫 경기였던 로리앙전에서 1골 1도움으로 강렬한 신고식을 치렀고, 2009년 33경기 9골 3도움, 2010-11시즌 35경기 12골로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그러나 팀은 승점 44점이라는 기록적인 수치에도 리그 18위로 강등되며 아이러니한 비극을 남겼다. 역설적으로 이 강등은 그의 빅리그 이적 가능성을 더 크게 만들었다.

2011년 여름, 여러 유럽 클럽의 러브콜이 있었지만 그의 심장을 흔든 건 한 통의 전화였다. 아르센 벵거 감독이 직접 건 전화로 그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자존심 아스널로 향했다. 등번호 9번, FA컵 볼튼전 풀타임 역전 결승골, 챔피언스리그 마르세유전 선발 62분 출전까지. 하지만 경쟁은 냉혹했다. 반 페르시, 샤막, 아르샤빈 등 쟁쟁한 공격진 속에서 출전 기회를 잡기란 아득했다. 결국 그는 스페인 라리가 승격팀 셀타 비고 임대로 돌파구를 찾았다. 라리가 22경기 4골 1도움의 기록은 분명 나쁘지 않았지만, 시즌 최종전 무단 불참 징계로 벌금과 보너스 삭감을 겪으며 마음 한쪽엔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2014년 2월 1일, 왓포드 임대 후 봉와직염으로 조기 귀국한 그는 팀에 복귀하지 못했고, 6월에는 아스널과 상호 계약 해지로 자유계약선수가 됐다. 축구 인생의 방향이 흔들리던 그 시기, 그는 사우디 리야드의 클럽 알샤바브 FC에서 새 출발을 시도했지만 7경기 1골 뒤 계약을 해지하며 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2015년, 7년의 유럽 서사를 뒤로하고 FC 서울로 복귀했다. ITC 지연으로 3라운드까지 기다렸지만, 제주전에서 복귀전을 치르고 4라운드 인천전에서 PK로 첫 골을 기록했다. 2016년 전북전 리그 스플릿 라운드 최종전에서 쏜 극장 결승골은 드라마의 정점이었다. 그의 득점으로 FC 서울은 극적인 우승을 맛봤고, 팬들은 다시 한번 깨달았다. “박주영은 큰 경기와 큰 장면을 사랑하는 선수”라는 걸.

2018년 부산과의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 경기 종료 직전 40m 장거리 극장골로 팀을 강등에서 구해낸 순간은 그의 커리어 캐릭터를 완성한 장면이었다. 2019년 36경기 12골 7도움, 2020년 31경기 9골 3도움으로 개인 커리어 최고 공격포인트 시즌을 보내며 그는 여전히 살아있는 발끝을 보여줬다. 2021년 서울과의 11년 동행을 마친 그는 현역 의지를 놓지 않았고, 2022년 1월 16일 울산행을 선택해 사제의 인연이 있던 홍명보 감독과 재회했다. 이어 2023~24년 플레잉 코치, 2025년 정식 코치 부임까지. 그의 축구는 이제 그라운드가 아닌 벤치에서 새로운 챕터를 쓰기 시작했다.

국가대표팀에서도 그의 골은 여전히 굵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조별 3차전 나이지리아전에서 아크 왼쪽 프리킥을 골망에 꽂으며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에 큰 힘을 보탰고, 같은 대회에서 두 번이나 ESPN MOM에 오르며 국제 무대 경쟁력까지 증명했다. 이어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 1골 1도움으로 한국 남자축구 사상 첫 메달을 함께 디자인하며 예술체육요원 신분으로 전환됐다. 2012년 하계 올림픽과 2010 FIFA 월드컵은 그의 커리어 영광의 양대 지표였다.
시간이 흐르며 병역 연기 논란과 실전 경쟁에서의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의 커리어를 감정으로만 정의할 수는 없다. 박주영은 언제나 골로 팀을 살려냈고, 중요한 장면에서 증명했기 때문이다. 화려함보다 더 강렬했던 건 ‘결정력의 타이밍’이었다.

그의 축구는 완벽하지 않았기에 더 인간적이었고, 그래서 더 뜨거웠다. 박주영의 커리어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면 결국 같은 결론에 닿는다.
큰 장면에서 골로 말한 스트라이커, 그리고 이제 그 장면을 만드는 감독 옆의 코치.
박주영의 축구는 형태만 바뀌었을 뿐, 중요한 순간에 빛나는 본질은 여전히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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